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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 최지하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5/09 [17:25] | 조회수 : 528

 

▲     ©시인뉴스 Poem

 

 

그림자놀이

 

 

그러니까

또 한 번 아침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본 그 아침을 다시

 

내 의지는 저토록 단호한 현관문을 나서는 일

하지만 식탁에서 그곳까지만

 

옆모습만 보이는 오른쪽 방과 의자 사이에서

시간의 체형으로 스물다섯 시간을

어려움은 좀 있지만 거기서만

 

등을 보이지 않고 이야기 할게

등을 갖지 않아서 의자는 삼백일이 넘는 벽이 되었지

 

오늘의 날씨를 보다가 진통제를 잃어버려서

시간에 속해있지 않은 나는 당분간 벽에 걸려있기로 한

 

나는 다음 생까지

여전히 아침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현관문을 향해 이동하는 사람

 

내가 발견 될 때까지

저 문은 이용자가 제한되겠습니다

 

 

 

 

어떤 각오

 

 

여기는 빈 칸이 많은 계절이라고 첫 줄에 쓴다

목구멍을 넘기지 못한 문장이 여름의 이면에서 검게 우거지고 있을 때

하루에 한 칸씩 켜지는 창문

미열의 저녁은 저 창을 통해 오나

 

그림자의 반쯤은 나도 모르게 네가 살지 않는 곳에 두고 온 불안을

혀를 깨물며 자꾸만 말을 참는 갈등을 낮이 깜깜해지는 현상이라 다시 쓰고

반복적으로 닫히기만 하는 문 앞에서 나는 언제나 바깥인데

세상의 그 무성한 문은 어디를 향해 열리나

 

자동판매기에 동전만 넣으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울음이 있다면

장식 하나 달지 않은 낱말들을 지겨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둔 감정들이 서로의 급소를 틀어쥐고 있어

구체적으로 울어본 적이 없다

 

진실이란 건 영원히 불가능한 슬픈 단위

어떤 징후로 꽃들은 자세히도 피어 심장의 색을 바꾸는지

마지막 행에 다다랐으니

마침내 외로워져야지

 

 

 

시작메모

 

 

지난겨울부터 그가 없는 벤치는 줄곧 한가하다

나는 종종 그곳에 앉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이이들 웃음소리가 막 푸르러진 잎맥에서 후드득 떨어진다

오후 세 시의 횡단보도는 건너편의 햇살만큼 눈부셔

너울너울 건너오는 그림자를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오월이었다

팔꿈치의 상처를 묵묵히 견디는 무사한 오월

멀어지는 그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펼쳐놓은 페이지에서 꼼짝 않고 살던

내가 겪고 있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걸 알았다

영원의 다른 말이란 걸

 

 

 

최지하

충남 서천 출생

2014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집 , 하고 싶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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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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