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비 외1 편 / 최연수 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14 [19:29] | 조회수 : 316

 

▲     © 시인뉴스 Poem



문득, 나비

 

 

설레는 햇살 한 짐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나는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사뿐, 열차 선 밖으로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 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 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 차표 한 장을 들고

막 여름을 향해 들어서는 백모란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민들레의 비행

 

 

 

눈 밝은 햇살이

푸른 활주로를 정비하는 봄

먼 여행을 앞둔 민들레가 한 올 한 올 사연을 말린다

 

그곳엔

눅눅한 기억을 말려야만 쉽게 풀리는 전례가 있고

바람의 갈피에 슬쩍 끼워 넣는 오래된 비행이 있다

추락과 결항과 불시착도 있어

질 좋은 바람을 선별해야만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차도나 바닷속으로 뛰어든

깜깜한 비행

노선을 잊은 꽃씨들이 오들오들 떨기도 한다

 

스스로 날아갈 수 없는 활주에

기분이 시들기도 하지만

날개는 차츰 부풀고

유실을 점쳐 더 많은 씨를 껴안는다

 

말장화 같은 이탈리아와 엎드린 강아지 같은 페루,

지구본을 돌리며 착지점을 계산하고

새털구름을 압축해 뒷목에 괸

낙천적인 꽃씨 하나,

잠꼬대를 기내식으로 떠먹으며 꿈을 순항할 거라고 한다

하강기류를 감지하면

애기똥풀 노란 점멸등이 착륙을 안내해줄 것이다

 

난기류를 벗어나 공단으로 착지한 반쪽의 언어들은

뿌리가 얕아

가벼운 부주의도 허투루 넘기지 못한다

몸살 앓는 송금이 있어야만 피는 국경 너머가 있다고

아직 귀항하지 못한 철야가 있다

 

연착 없는 알람이 깨우는 이른 아침

피부색 다른 걸음이

잠이 모자란 골목으로 들어선다

 

 

 

****

최연수

2015년 영주신춘, 󰡔시산맥󰡕으로 등단.

평론집으로 󰡔이 시인을 조명한다󰡕가 있다.

시산맥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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