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개의 달을 씻는 여자 / 서정임 시인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06/19 [22:10] | 조회수 : 416

 

▲     ©시인뉴스 Poem

 

 

 

수십 개의 달을 씻는 여자 / 서정임

 

 

 

그녀는 건조대의 접시를 꺼낸다

얼굴도 몸매도 둥근 곡선인 그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저녁을 배식한다

차례로 줄 선 아이들 손에 둥싯

달이 하나씩 떠오른다

 

아이들은 불 꺼진 아궁이 같은 입 속으로

허기를 밀어 넣는다

며칠 후에 돌아와 데려가겠다는

달나라에는 떡방아를 찧고 산다는 토끼 두 마리와

계수나무 우화 같은

그저 한 번쯤 목에 걸어두고 간

약속을 목메게 씹어 먹는다

 

어둠에도 독니가 있어 한번 물린

상처는 덧난다

천지사방 어둠을 껴안는 하늘도

그 마음 덜고자

입구 환한 하수관을 묻어 두는 것인지

달빛이 구정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믿음의 베일은 언젠가는 스스로 벗겨내라

씌워 놓는 것인가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씻는다, 그녀는

한 방울의 습기까지도 증발시킬 건조대에

수십 개의 달을 꽂아 넣는다

 

 

 

 

 

 

 

 

축제의 바다에서

-어느 무명시인의 비애 /서정임

 

 

그날 밤 나는 무인도였다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있는 내게

아무도 헤엄쳐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말을 걸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다 아무 말 없이

그저 흘러가는 물결처럼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조명이 설치된 무대 위 날치들이 튀어 올랐다

섬광 같은 시선으로 바닷속 어느 한 풍경을 베어내어

생생하게 인화한 시들을 낭송한다

수면을 박차는 싱싱한 시어들이

높이 더 높이

멀리 더 멀리

내 귀를 사로잡으며 절묘한 활강을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탄력 있는 몸통으로 이어지는 연들이 매끈하다

랜딩기어 같은 꼬리지느러미로 더더욱 고도를 높이는

경골어강(硬骨魚强) 글라이더 같은 그들을 향해

상기된 뭇 좌석에서 쏟아내는 박수소리가 비늘조각처럼 반짝거리고

 

그날 밤 초대된

그러나 초대되지 않은 나는

명치까지 차오른 어둠을 화려한 뷔폐로 집어먹고 있었다

목이 꽉 잠긴 무인도였다

 

 

 

 

 

 

      

2006[문학 선] 등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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