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계단
이현실
뉴욕 그랜드센트럴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 부드러운 선율이 발목을 휘감는다 시간도 잠시 쉬어가는 층계참 금발의 남자와 바이올린이 종종걸음을 붙잡는다 이곳은 소리의 계단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엉킨 걸음이 풀리고 다급한 출근길도 느긋하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소리의 페이지에 그리운 이름이 생각난다 얼마나 많은 슬픔이 쌓여 악기도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잔잔하게 파고드는 그 떨림에 굳은 표정이 풀리고 마음이 헐렁해지는 시간 계단을 타고 줄지어 흘러가면 소리를 파는 사내가 우듬지에 살고 있다
금홍이
달맞이꽃 보면 금홍이 피어나네, 용산 외딴 골목 해장국집이었던가 몰라, 이층 구석 다다미방에서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노래하던 열아홉 살 금홍이, 마주 보면 달맞이꽃 같다가도 박꽃처럼 눈부시기도 하고, 달아오른 뺨이 능금 같아서 술잔을 부딪치고 젓가락을 두드리며 엇박자 놓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던 금홍이, 어쩌자고 나를 옆방에 모셔놓고 웃으면서도 속으로 그렁그렁 울부짖던 내 친구 금홍이,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李箱스럽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던 그해 여름, 달맞이꽃은 안 보이고, 내 마음에 금홍이가 꽃 피네
이현실 약력 2003 예술세계 등단 저서: 수필집『꿈꾸는 몽당연필』 시집 『꽃지에 물들다』 예술시대작가회. 동작문협. 문학동인 글마루. 지용문학회 회원. 현「지성의 샘 」주간. 「미래시학 」편집주간. <저작권자 ⓒ 시인뉴스 포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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