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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외9편 / 배윤주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0/21 [19:58] | 조회수 : 756

▲     © 시인뉴스 포엠



 

애기똥풀

 

배윤주

 

 

 

들길을 가네.

 

5월의 들판은 연두빛 풀빛바다

 

풀빛 물위에 별이 되어 뜬 노랑풀꽃

 

별밤을 엎어 놓은 듯 별들이 떴네.

 

 

이쁜 꽃 꺽어 가자고 손 내밀면 바람이 내리는 공습경보

 

애기똥풀 노랑꽃이 흔들리며 들판은 풀빛물결을 치네.

 

 

 

네 이름 애기똥풀, 진짜인가 호기심에 꺽여내니

 

애기똥물 노란진액이 눈물처럼 흐르네.

 

 

 

 

  

 

 

 

나비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배윤주

 

 

 

 

풀 먹인 모시처럼 하늘을 이고 있는 나비의 쉼

늘어나버린 스프링의 피로가 겨드랑이로부터 심장으로 파고들어 잠이 든 곳곳에서

......산맥을 넘는 호랑나비여!

수없이 부딪힌 나비들의 수많은 사체들, 굳게 접혀진 날개들

죽음속에서도 겨울 새벽처럼 빛나는 나비의 날개를 보라.

접혀진 날개의 편린이 보내오는 빛의 이야기를 들어라.

 

손가락처럼 말아 올리는 파도의 치마폭을 넘고자하는 꿈

저 보랏빛 날개의 꿈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상상하자.

나비 날개에 묻은 지도의 책장을 읽자.

바람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으로 보내는 꿈의 대화

무색이거나 그것이 나노 단위의 기하학적이거나

층층이 쌓인 구조이거나......

때론 빛을 반사하고 때론 흡수하여 신호를 보내는 나비의 날개

아름다운 색의 가루가 뿜어 나오는 일은 절대 없다.

그저 부딪치며 빛 날뿐이다

나비 날개의 나노 구조가 파괴되는 날!

그 아름다운 빛깔을 잃게 되고, 나비날개는 짝마저 잃는다.

슬프도록 하얀 빛의 화려한 꿈이여!

 

모르포나비의 짙푸른 날개를 보라!

가을 하늘을 빨아들인듯 파란 날개짓이 아니냐?

가급적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분노의 질주로 지구를 횡단하는 제왕나비가 되는 날.

모나크여!

너의 독성으로 설마 너의 꿈이 젖지 않도록 하라.

나비의 날개는 접을 수는 있어도 젖지는 않는다.

나비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어머니의 베개

 

배윤주

 

 

 

 

베갯잇에 수놓인 작은 들꽃은 들국화, 쑥부쟁이.....이름 모를 들꽃들

어릴 적 어머니는 베갯잇마다 꽃을 수놓으셨다.

 

먼데 산골집 굴뚝에서 불냄새를 한 웅큼씩 끄집어 낼 때쯤

어머니는 내 머리에 당신의 팔베개 대신에

들꽃 핀 베개 하나 받쳐놓고 가셨다.

풀 먹인 광목 위 들꽃의 까칠함이 잠을 흔들 때

식어가던 방바닥을 미지근히 덮펴오던 새벽장작불

한 장씩 번져오는 구들장의 뜨듯함에

새벽잠은 다시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어머니는 내 머리에 베개 하나 받쳐두고

밤새 식어버린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랫목은 어머니의 품처럼 언제나 따뜻했다.

 

혼자 잠드는 밤

내 머리맡에 베개 하나 있다.

칭얼대는 졸음을 베개에 눕히면 나약하게 감기는 눈

졸음처럼 배어나오는 엄마의 들꽃들......

귓전에 어머니의 맥박 뛰는 소리가 곁에 와 눕는다.

눈꺼풀 옆으로 흐르는 소리 한 가닥씩 되새길라치면

눈감은 천장엔 하얀 들꽃이 별처럼 핀다.

 

 

 

   

 

 

 

꽃그늘

 

배윤주

 

 

 

순한 바람 따라 뜰마루에 나서니

 

맑은 햇살이 뒹구는 봄의 마당엔

 

돌담 위로 하얗게 핀 목련꽃이 구름처럼 가득합니다.

 

 

 

목련꽃 흰 나비 떼 하늘거리는 가지사이로 하늘은 바다가 되어

 

향기로운 늦봄이 눈부시게 그득합니다.

 

 

 

하늘 높이 핀 목련꽃이 어제처럼 가득한데,

 

돌담 밑 꽃그늘아래엔

 

고요히 갈라 앉은 이른 봄들이 소복합니다.

 

 

 

     

 

가로등

배윤주

 

 

 

 

노을을 보낸 어둠속에 눈을 뜨는 가로등

 

점점 달아오르듯 양 팔을 벌리는 빛의 등뒤로 더욱 짙어지는 어두움

 

바람조차 한 올 퍼내지 못하는 치밀한 빛이여.

 

가는 길을 밝혀주려 그 자리에

 

두 발을 묻었는가.

 

 

쏟아 내리는 침묵의 빛을 너는 이슬처럼 밟고 가버렸고

 

네가 지나가버린 투명한 자리

 

너를 보낸 불빛이 노을처럼 가득한데

 

불빛아래

 

여전히

 

불 끄지 못한 가슴이 서있다.

 

 

 

 

      

 

아버지의 목소리

 

배윤주

 

 

 

 

아버지가 보고플 때는

노을이 진다.

그림자 길게 키를 키우면

어디선가 뚜벅뚜벅 걸어오실 것 같아.

 

죽음을 잊고 사는 영혼처럼

욕심의 주먹으로 움켜쥔 어깨가 아파오면

욱신욱신 통증 따라 울려오는

아버지목소리

영원한 것은 없나니 벗어두고 갈 짐 가볍게 가거라.”

 

두려움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폭포처럼

좌절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아버지는 툭툭 어깨를 치신다.

내려갈 일보다 올라갈 일이 더 많단다.”

아버지는 쿵쿵 노크를 하신다.

울어 본 사람이 웃을 줄 안단다.”

 

삶의 과속 악셀을 밟을 때

끼이익 ......!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

사랑한다, 내 딸아.”

 

 

 

  

 

 

 

엄마의 방

배윤주

 

 

 

 

 

오랜만에 홀로 사시는 엄마 집에 왔다.

문을 열면 환하게 피는 함박 꽃웃음의 엄마 얼굴

깊은 산골 소녀 같은 기쁨이 나를 부둥켜안고

급히 달려나온 젖은 두 손이 투덕투덕 나의 등을 다독인다.

'아가, 오느라고 수고 했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의 방에 앉으면

한상 가득 엄마의 일상 이야기가 소복이 안겨온다.

머리맡에 작은 손거울. 향내 나는 분통. 색 바랜 전화기. 모서리가 일어선 손수첩. 손때 묻은 몽당연필......

엄마의 방은 거친 외로움의 박물관

오롯이 함께 모여서 엄마와 살고 있구나.

 

그리고 방 한가운데 오랜 세월을 달려온 듯 걸려있는 달력

흐려진 시력만큼 노안의 숫자가 확대되어 펼쳐진 일정

오늘 날짜에 서툴지만 진하고 크게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

어깨너머 혼자 배운 엄마의 한글솜씨가 눈에 낯익다.

 

정성의 힘이 빡빡히 들어간 삐뚤한 글씨 '내 딸 윤주 오는 날

엄마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그리며

나와 함께 살고 있었구나.

 

 

 

 

   

 

감기유감

 

배윤주

 

 

 

 

누운 듯 기대어 선 나른함

조금씩 묵지근해 지는 앞머리의 감각에 낯익은 이름이 치근댄다.

주황빛 구름띠처럼 가느다란 황홀함마저 눈꺼풀에 얹어진다.

전신을 엄습하는 느린 몸의 대화

나약한 고귀함으로 사치스러운 휴식이 저녁노을처럼 깊어진다.

눈꺼풀이 쇠약해지면서 시간처럼 다가오는 확신, 감기다!

 

창가 너머 엊그저께 옮겨 심은 고무 나뭇잎 몇 개가 노랗다.

 

일상의 브레이크처럼 가끔씩 걸리곤 하는 병,

설사 심하게  앓는다 해도 죽음에 이르지는 않으리라는

무모한 믿음에 푸욱 자학할 수 있는 이별 같은 병

푸욱 앓고 나면 잊어버리는 사랑 같은 병

 

병들어가고 있음의 자각에

눈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열감은 자아의 분출

한때 지나가면 그 뿐일 거라는 실낱같은 쾌감과 예감이 얽혀 퍼지는 열기

삶의 궤도에서 발생된 오류를 뱉어내듯 튀어나오는 기침

조용히 육체로 여리게 침잠하는 통증

누군가의 숨을 거쳐 온 너와의 공생을 받아들이며 순응한다.

착한 긍정으로 부득불 주어지는 강제적 휴식에 오히려 깨어나는 상념의 물결

 

새로 심은 고무나무도 몸살을 앓고 나면 새벽 창문의 새잎을 낼 것이다.

 

가끔은 연민의 대상이고 싶은 내 삶에

절규하는 저항으로 눕고 싶다.

 

 

 

 

 

 

선풍기

 

배윤주

 

 

 

 

저 구석에 뒤돌아서서 혼자 울먹이듯

돌아앉은 선풍기를 발견했다.

 

힘겹게 너를 안아서 되돌려 앉혀놓고

곱게 빗어 넘긴 철망의 틈 사이로 내려앉은

서러움의 먼지를 한 꺼풀씩 걷어낸다.

무더위 속에 오롯이 마주보던 선풍기

소리조차 죽이고 멈추어 서 있다.

죽을 듯이 뜨거웠던 시절 열망했던 가슴속에 불던 열풍

그 사랑도 사진처럼 정지된 가슴으로 기억 속에 있다.

 

한때는

너 없이 못 살겠다고

너를 끌어안고

너와 얼굴을 맞대고

하루 종일 네 앞에 마주 서있기만을 바랬지.

사랑하던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지.

 

이제

다 식어버린 바람을 정이라 에리며

이 다음에 다시 보자 한다.

그 사람 그 사랑도 이 다음에 뜨겁게 다시 보고 싶다.

 

 

 

 

      

 

눈의 기도

 

배윤주

 

 

 

 

모든 소리를 들으며 눈이 내린다.

눈은 모든 소리를 더듬으며 기도한다.

 

눈이 없어도 더듬으며,

더듬으며 내리는 눈은

누군가의 마음을 익숙하게 녹여내려는 것

차마 못 건낸 몇 푼의 이야기마저 거미줄같은 인연에 걸려도

눈은 세상을 더듬으며 녹여 내린다.

 

눈 내리는 막차에 웃는 이 늦게까지 없어도

마주할 가족들의 미소에 한 고개 남은 길도 짧다.

 

어둠의 속눈썹이 감기도록 세상을 더듬으며 여물게 내리는 눈은

거대하고 하얀 무명이불처럼 쌓이고

막차는 멈출 것을 예상하면서 자꾸 달린다.

막차에서 내리는 것은 투정에 지친 발

발바닥을 간지르며 번져가는 피로에

더욱 하얗게 피어나는 눈의 기도

가장 먼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잠 드는 자, 눈을 뜨게 하소서.

눈 시린 이들의 서러운 이야기, 해 밑으로 소복하게 하소서.

오래전 붉었던 동백이 온 생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이제 푸른 꽃받침마저 시름을 잊은 하얀 빛이 되게 하소서.

 

바람에 시달리던 모퉁이에

몰려 앉은 눈의 기도가 하얗게 밤을 더듬는다.

눈 어두운 자의 눈이 되어 귀를 대고 침묵의 손길로 듣는다.

막차는 떠날 것을 약속하며 자리에 들듯이

기도는 온 생의 이야기를 익숙하게 더듬으며 눈이 되어 내린다.

한 알의 기도마저 분주히 휘날리는 침묵으로 세상을 보듬게 하소서.

 

 

 

 

 

배윤주

 

경인교육대학 졸업

한국교원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시인협회 회원

2019 년 시와 경계 등단

 

 

 

 

   

애기똥풀

 

배윤주

 

 

 

들길을 가네.

 

5월의 들판은 연두빛 풀빛바다

 

풀빛 물위에 별이 되어 뜬 노랑풀꽃

 

별밤을 엎어 놓은 듯 별들이 떴네.

 

 

이쁜 꽃 꺽어 가자고 손 내밀면 바람이 내리는 공습경보

 

애기똥풀 노랑꽃이 흔들리며 들판은 풀빛물결을 치네.

 

 

 

네 이름 애기똥풀, 진짜인가 호기심에 꺽여내니

 

애기똥물 노란진액이 눈물처럼 흐르네.

 

 

 

 

 

 

 

 

 

 

 

 

 

나비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배윤주

 

풀 먹인 모시처럼 하늘을 이고 있는 나비의 쉼

늘어나버린 스프링의 피로가 겨드랑이로부터 심장으로 파고들어 잠이 든 곳곳에서

......산맥을 넘는 호랑나비여!

수없이 부딪힌 나비들의 수많은 사체들, 굳게 접혀진 날개들

죽음속에서도 겨울 새벽처럼 빛나는 나비의 날개를 보라.

접혀진 날개의 편린이 보내오는 빛의 이야기를 들어라.

 

손가락처럼 말아 올리는 파도의 치마폭을 넘고자하는 꿈

저 보랏빛 날개의 꿈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상상하자.

나비 날개에 묻은 지도의 책장을 읽자.

바람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으로 보내는 꿈의 대화

무색이거나 그것이 나노 단위의 기하학적이거나

층층이 쌓인 구조이거나......

때론 빛을 반사하고 때론 흡수하여 신호를 보내는 나비의 날개

아름다운 색의 가루가 뿜어 나오는 일은 절대 없다.

그저 부딪치며 빛 날뿐이다

나비 날개의 나노 구조가 파괴되는 날!

그 아름다운 빛깔을 잃게 되고, 나비날개는 짝마저 잃는다.

슬프도록 하얀 빛의 화려한 꿈이여!

 

모르포나비의 짙푸른 날개를 보라!

가을 하늘을 빨아들인듯 파란 날개짓이 아니냐?

가급적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분노의 질주로 지구를 횡단하는 제왕나비가 되는 날.

모나크여!

너의 독성으로 설마 너의 꿈이 젖지 않도록 하라.

나비의 날개는 접을 수는 있어도 젖지는 않는다.

나비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어머니의 베개

 

배윤주

 

베갯잇에 수놓인 작은 들꽃은 들국화, 쑥부쟁이.....이름 모를 들꽃들

어릴 적 어머니는 베갯잇마다 꽃을 수놓으셨다.

 

먼데 산골집 굴뚝에서 불냄새를 한 웅큼씩 끄집어 낼 때쯤

어머니는 내 머리에 당신의 팔베개 대신에

들꽃 핀 베개 하나 받쳐놓고 가셨다.

풀 먹인 광목 위 들꽃의 까칠함이 잠을 흔들 때

식어가던 방바닥을 미지근히 덮펴오던 새벽장작불

한 장씩 번져오는 구들장의 뜨듯함에

새벽잠은 다시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어머니는 내 머리에 베개 하나 받쳐두고

밤새 식어버린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랫목은 어머니의 품처럼 언제나 따뜻했다.

 

혼자 잠드는 밤

내 머리맡에 베개 하나 있다.

칭얼대는 졸음을 베개에 눕히면 나약하게 감기는 눈

졸음처럼 배어나오는 엄마의 들꽃들......

귓전에 어머니의 맥박 뛰는 소리가 곁에 와 눕는다.

눈꺼풀 옆으로 흐르는 소리 한 가닥씩 되새길라치면

눈감은 천장엔 하얀 들꽃이 별처럼 핀다.

 

 

 

 

 

 

 

 

 

 

 

꽃그늘

 

배윤주

 

 

 

순한 바람 따라 뜰마루에 나서니

 

맑은 햇살이 뒹구는 봄의 마당엔

 

돌담 위로 하얗게 핀 목련꽃이 구름처럼 가득합니다.

 

 

 

목련꽃 흰 나비 떼 하늘거리는 가지사이로 하늘은 바다가 되어

 

향기로운 늦봄이 눈부시게 그득합니다.

 

 

 

하늘 높이 핀 목련꽃이 어제처럼 가득한데,

 

돌담 밑 꽃그늘아래엔

 

고요히 갈라 앉은 이른 봄들이 소복합니다.

 

 

 

 

 

 

 

 

 

 

 

 

가로등

배윤주

 

 

노을을 보낸 어둠속에 눈을 뜨는 가로등

 

점점 달아오르듯 양 팔을 벌리는 빛의 등뒤로 더욱 짙어지는 어두움

 

바람조차 한 올 퍼내지 못하는 치밀한 빛이여.

 

가는 길을 밝혀주려 그 자리에

 

두 발을 묻었는가.

 

 

쏟아 내리는 침묵의 빛을 너는 이슬처럼 밟고 가버렸고

 

네가 지나가버린 투명한 자리

 

너를 보낸 불빛이 노을처럼 가득한데

 

불빛아래

 

여전히

 

불 끄지 못한 가슴이 서있다.

 

 

 

 

 

 

 

 

 

 

 

아버지의 목소리

 

배윤주

 

아버지가 보고플 때는

노을이 진다.

그림자 길게 키를 키우면

어디선가 뚜벅뚜벅 걸어오실 것 같아.

 

죽음을 잊고 사는 영혼처럼

욕심의 주먹으로 움켜쥔 어깨가 아파오면

욱신욱신 통증 따라 울려오는

아버지목소리

영원한 것은 없나니 벗어두고 갈 짐 가볍게 가거라.”

 

두려움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폭포처럼

좌절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아버지는 툭툭 어깨를 치신다.

내려갈 일보다 올라갈 일이 더 많단다.”

아버지는 쿵쿵 노크를 하신다.

울어 본 사람이 웃을 줄 안단다.”

 

삶의 과속 악셀을 밟을 때

끼이익 ......!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

사랑한다, 내 딸아.”

 

 

 

 

 

 

 

 

 

 

 

엄마의 방

배윤주

 

오랜만에 홀로 사시는 엄마 집에 왔다.

문을 열면 환하게 피는 함박 꽃웃음의 엄마 얼굴

깊은 산골 소녀 같은 기쁨이 나를 부둥켜안고

급히 달려나온 젖은 두 손이 투덕투덕 나의 등을 다독인다.

'아가, 오느라고 수고 했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의 방에 앉으면

한상 가득 엄마의 일상 이야기가 소복이 안겨온다.

머리맡에 작은 손거울. 향내 나는 분통. 색 바랜 전화기. 모서리가 일어선 손수첩. 손때 묻은 몽당연필......

엄마의 방은 거친 외로움의 박물관

오롯이 함께 모여서 엄마와 살고 있구나.

 

그리고 방 한가운데 오랜 세월을 달려온 듯 걸려있는 달력

흐려진 시력만큼 노안의 숫자가 확대되어 펼쳐진 일정

오늘 날짜에 서툴지만 진하고 크게 그려진 빨간 동그라미

어깨너머 혼자 배운 엄마의 한글솜씨가 눈에 낯익다.

 

정성의 힘이 빡빡히 들어간 삐뚤한 글씨 '내 딸 윤주 오는 날

엄마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그리며

나와 함께 살고 있었구나.

 

 

 

 

 

 

 

 

 

 

 

 

 

감기유감

 

배윤주

 

 

누운 듯 기대어 선 나른함

조금씩 묵지근해 지는 앞머리의 감각에 낯익은 이름이 치근댄다.

주황빛 구름띠처럼 가느다란 황홀함마저 눈꺼풀에 얹어진다.

전신을 엄습하는 느린 몸의 대화

나약한 고귀함으로 사치스러운 휴식이 저녁노을처럼 깊어진다.

눈꺼풀이 쇠약해지면서 시간처럼 다가오는 확신, 감기다!

 

창가 너머 엊그저께 옮겨 심은 고무 나뭇잎 몇 개가 노랗다.

 

일상의 브레이크처럼 가끔씩 걸리곤 하는 병,

설사 심하게  앓는다 해도 죽음에 이르지는 않으리라는

무모한 믿음에 푸욱 자학할 수 있는 이별 같은 병

푸욱 앓고 나면 잊어버리는 사랑 같은 병

 

병들어가고 있음의 자각에

눈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열감은 자아의 분출

한때 지나가면 그 뿐일 거라는 실낱같은 쾌감과 예감이 얽혀 퍼지는 열기

삶의 궤도에서 발생된 오류를 뱉어내듯 튀어나오는 기침

조용히 육체로 여리게 침잠하는 통증

누군가의 숨을 거쳐 온 너와의 공생을 받아들이며 순응한다.

착한 긍정으로 부득불 주어지는 강제적 휴식에 오히려 깨어나는 상념의 물결

 

새로 심은 고무나무도 몸살을 앓고 나면 새벽 창문의 새잎을 낼 것이다.

 

가끔은 연민의 대상이고 싶은 내 삶에

절규하는 저항으로 눕고 싶다.

 

 

 

 

 

 

선풍기

 

배윤주

 

저 구석에 뒤돌아서서 혼자 울먹이듯

돌아앉은 선풍기를 발견했다.

 

힘겹게 너를 안아서 되돌려 앉혀놓고

곱게 빗어 넘긴 철망의 틈 사이로 내려앉은

서러움의 먼지를 한 꺼풀씩 걷어낸다.

무더위 속에 오롯이 마주보던 선풍기

소리조차 죽이고 멈추어 서 있다.

죽을 듯이 뜨거웠던 시절 열망했던 가슴속에 불던 열풍

그 사랑도 사진처럼 정지된 가슴으로 기억 속에 있다.

 

한때는

너 없이 못 살겠다고

너를 끌어안고

너와 얼굴을 맞대고

하루 종일 네 앞에 마주 서있기만을 바랬지.

사랑하던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지.

 

이제

다 식어버린 바람을 정이라 에리며

이 다음에 다시 보자 한다.

그 사람 그 사랑도 이 다음에 뜨겁게 다시 보고 싶다.

 

 

 

 

 

 

 

 

 

 

 

눈의 기도

 

배윤주

 

모든 소리를 들으며 눈이 내린다.

눈은 모든 소리를 더듬으며 기도한다.

 

눈이 없어도 더듬으며,

더듬으며 내리는 눈은

누군가의 마음을 익숙하게 녹여내려는 것

차마 못 건낸 몇 푼의 이야기마저 거미줄같은 인연에 걸려도

눈은 세상을 더듬으며 녹여 내린다.

 

눈 내리는 막차에 웃는 이 늦게까지 없어도

마주할 가족들의 미소에 한 고개 남은 길도 짧다.

 

어둠의 속눈썹이 감기도록 세상을 더듬으며 여물게 내리는 눈은

거대하고 하얀 무명이불처럼 쌓이고

막차는 멈출 것을 예상하면서 자꾸 달린다.

막차에서 내리는 것은 투정에 지친 발

발바닥을 간지르며 번져가는 피로에

더욱 하얗게 피어나는 눈의 기도

가장 먼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잠 드는 자, 눈을 뜨게 하소서.

눈 시린 이들의 서러운 이야기, 해 밑으로 소복하게 하소서.

오래전 붉었던 동백이 온 생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이제 푸른 꽃받침마저 시름을 잊은 하얀 빛이 되게 하소서.

 

바람에 시달리던 모퉁이에

몰려 앉은 눈의 기도가 하얗게 밤을 더듬는다.

눈 어두운 자의 눈이 되어 귀를 대고 침묵의 손길로 듣는다.

막차는 떠날 것을 약속하며 자리에 들듯이

기도는 온 생의 이야기를 익숙하게 더듬으며 눈이 되어 내린다.

한 알의 기도마저 분주히 휘날리는 침묵으로 세상을 보듬게 하소서.

 

 

 

배윤주

 

경인교육대학 졸업

한국교원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시인협회 회원

2019 년 시와 경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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