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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쌓인 길 외9편 / 김 진 돈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1/12 [19:48] | 조회수 : 458

 

▲     © 시인뉴스 포엠



 

질문이 쌓인 길

 

김 진 돈

 

 

 

 

붉은 잎들이 눈을 뜬다

 

벽과 창문의 바깥은 긴장된 도시의 표정

도시와 바닥은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

 

바닥에 떨어진 도시들

뒤집혀진 길들이 달그락거리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이 누워있는 자세는 우울인가 여자인가 걸어가는 감정은 풀잎이 되고 황량한 들판이 움직이는 자세는 바람인가 남자인가 질문이 자란 흔적들

 

지나간 발자국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녁이 벗어놓은 광기들

 

나무가 몰고 간 물음, 성찰은 묻고 또 묻는다

 

갸우뚱갸우뚱하던 길이 갈고리의 꼬리말을 긴장 밖으로 꺼내자

붉은 잎들이 눈을 뜬다

끊어진 바닥에 질문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

 

벽과 창문의 바깥은 긴장된 도시의 표정

 

모든 기억은 구부린 오늘로 돌아가고

새들이 후두둑 휩쓸었던

어제의 성찰이 모였던 길

 

찍힌 새발자국처럼 천 길의 질문이 선명하다

 

 

  

 

돌의 생각

 

김 진 돈

 

 

 

빗방울이 돌에 박힌 통증을 씻어내고 있다

 

곰보자국처럼 불안한 표면의 감정들, 돌은 영역의 한쪽을 양보했는데 그만큼 검게 부풀어진 귓바퀴, 바깥으로 붉게 울혈된 발가락은 어쩌고

부스럭거리며 흔들리는 감정들

뒤통수를 넘나드는 그림자

그간 고생이 많았구나

 

사거리 향나무 아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채

울퉁불퉁하게 굳은

돌의 근육

 

멀리 이곳까지 왔구나

 

나뭇가지에 걸린 경적소리, 허공에서 떨리고 있다

사리처럼 단단해진 불온

쪼고 쪼아 뚫린 구멍으로 빠져 나오는 뒷골목

언제 나타났을까 닳고 닳아진 조각들, 비틀거리며 뒤섞이는 복면들

 

매일 풍우한서를 입던 돌의 외투는 얇아지고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지냈구나 물은 토해내고 피부는 거칠고 돌 이면엔 우둘투둘하게 부풀린 새카만 혈관들, 이제 돌도 감정을 버렸을거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오래된 길을 돌아온 바람이 돌을 쓰다듬어주곤 했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돌 틈에 한 점처럼 잉태한 푸른 이끼와 껍데기는 너덜너덜한 그대로 무릎을 구부린 채,

 

고요한 선정에 들어간 돌은 내외이며 화엄의 법계이다

 

 

 

 

동백

김 진 돈

 

 

 

폭풍, 그 소용돌이 바닷가 동백은 다시 피어났다

허공을 찌른 동백, 푸른 손이 바람의 허리를 잡는다

 

돌아온 우리를 가끔 눈감게 했지 동백은

동백과 동백 사이를 봄의 눈금으로

저울질했지

근육질을 뽐내는 그 입술

우린 붉은 꽃밭에서 최초의 여행을 생각했던

천 년의 한 이 있었다

동백꽃의 무게는

짙푸른 바람의 크기였지

 

설렘도 찢어진 멍도 구겨진 바람이다

이제 빈칸에 그녀가 들어찬다

 

 

 

자꾸 비껴만 가는

김 진 돈

 

 

 

붉은 융탄자를 깔아놓은 환영(幻影)

한때 전성기는 사라지고

 

가느다란 철사처럼 꽃 대궁만 우두커니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꽃무릇이 유명하다는 함평 용천사

절정은 지나가고

 

한 때를 비껴가듯 서 있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는 듯

파란 잎들이 옹기종기 옆구리에 툭툭 나와 있다

 

붉게 필 때는 오지 못하는

일에 치우쳐 가슴에 구멍이 난 불길한 암호

온 바닥이 낭자한 객혈로 뿌려진 뒤

 

곡선의 을 돌아 우두커니 도착이라니

 

교차점에서 왜 자꾸 비껴만 갔을까

풍화된 시간처럼 살자던 우리

 

얼마나 지천으로 흩뿌렸던가, 붉은 환영처럼

꽃필 때 가리라던

 

이렇게 비켜 갈 것이라는

세월도 길을 잃을 것이라는

 

 

 

 

하비스커스

김 진 돈

 

 

 

한 잎 마셔볼래? 한 잎

 

혀를 잡아당기며 여름이 입맞춤하는 동안

초원은 메마른 의심을 하는데, 어쩜

 

이층 창밖엔 장맛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바람이 스냅사진을 연속 찍는다고 하자면, 자연스러움이 좋은 거야

 

음악의 눈빛은 캄캄해지고 숲은 폭죽처럼 폭발하고 별들의 이빨은 울음을 뽑아내는데

한 모금씩 바꿔 마시며 그들의 방식을 음각하고 있다

 

남은 키스, 내일은 알 수 없는 거야 서로에게 깊어지는 비의 떨림이 공간을 촉촉이 번갈아 채워가는 것이다 혀 없는 입술을 어둠에 맡기고 빗소리에 잎과 잎이 섞이고 나는 쓰다듬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배가 고프잖아

 

사바나 초원에 쏟아지는 우기처럼

당신은 비를 버리고 비는 비애를 버리는 사이

멈추지 않는 갈참나무와 멈춰버린 갈참나무 바깥으로 번개가, 어쩜,

나는 해당화 핀 해안가를 걷고 걸으며 또

풍화된 시간을 걸으며 붉게 익어가는 중이야

기억의 얼룩처럼

 

바람은 푸른 길에 소리를 한 잎씩 떨어뜨리며 방향을 돌리는데 잎은 불연속적으로 길어진다 메마른 초원은 의심을 하는데, 그러니까

 

멀고 먼 현기증을 떠올리며 같은 습성으로 뜨거워졌던

커피향 같은 붉은 입술, 아니

별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손과 발은 장작처럼 딱딱해지고 펄럭이는 구름사이

 

불안이 헛도는 시절, 붉은 잎은 투명한가

 

 

 

별과 풍등

   김 진 돈

 

 

 

수천만 개의 풍등을 바라본다 각각의 소원이 담긴, 누군가의 아득한 영혼이었을 아굴라 초원의 밤하늘이 빼곡하다

 

내 가슴을 가로지르는 풍등을 쏘아보며 나는 지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빛이 된다 수억 년이 지나 오늘의 별이 되어 반짝인다 바람에도 지지 않는 저 풍등을, 불시에 끄는 이가 있어 찰나에 빗금이 그어지고,

 

누군가는 성호를 긋는다

 

빈자리가 채워지고 하늘과 풍등이 다시 반짝인다

그것은 태초이고 아득한 떨림이다

 

 

 

 

名醫

김 진 돈

 

 

 

약재를 꺼내려고 한약장 앞에 섰다

사각형 안에 한약재들이 가지런하다

그들은 치료되는 목표치로 나를 유혹한다

뿌리는 고통을 안은 채

저마다 푸른 언어로 고여 있다

달려온 백출, 당귀, 숙지황, 천궁이

활어처럼 요동친다 허기진

풀밭을 헤엄쳐온 너,

내가 名醫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 것이다 누군가를

아물게 하는 하나뿐인 낌새는

왼쪽 뇌에서 돌아 멈춘다

나의 독특한 처방을 탓하지 마라

 

속살 하얗게 깨어나는 호흡들

밝은 신음이 오버랩 된 當歸 한 첩

 

 

 

 

봄날

김 진 돈

 

 

 

허리를 구부린 할머니를 부축하고 들어선다. 할머니는

숨을 헐떡이며 침 한대 맞으면 나을 것 같아

 

진찰실 침대에 누우며 원장 선생, 결혼했어? ……, 총각 같아서……

 

자고 나니 허리에 탈이 났다는 할머니,

묻지도 않은 말이 목련꽃을 닮았다

한창땐 침 한 대면 그만이었어

 

내 손을 꼭 쥐시고는

젊어서 좋겠어.”

 

할머니를 따라 천천히 출입문을 나선다.

봄볕도 많이 기울었다.

 

 

     

 

사랑이면

김 진 돈

 

 

 

 

기억이 두 개의 시간에 걸려 있다

 

한 그림자가 문 밖을 건너면 눈동자가 찾아온다 새로 생긴 달빛이 그림자 모서리를 바라본다 발길 끊어진 다리에 남아있는 바람들 눈썹의 두께도 얇아지고 희석 될 수 있는 겨울도 있는 것이다

 

수없이 이별한 갈래길과 눈짓들 이면에 묶인 생각들이 흔들린다

 

기억은 혼자다 몸의 변두리는 바닥인 것이다

 

조용히 부르면 손가락과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리는 지난 모래밭의 발자국들 흉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제 몸을 쓰다듬던 혀가 닳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과는 떠올린다

 

김 진 돈

 

 

 

모든 것을 한 각도에서 떨어뜨린다

 

나는 가을의 가지,

 

사과 속에서 고요의 사과가 빠지고 있다

 

사과는 오랫동안 뜬눈으로 머문다

가지의 뼈가

더 뻗어나간 가지와 잎들이

먼 햇살을 잡으려는 순간

 

사과가 붉어지네요

햇빛이 비추는 반대 방향에서

 

거기 누구 없나요

둥근 울음이 뒹굴고 있어요

 

기억 속으로 상처가 다가간다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물들어진 꽃들의, 햇빛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것이에요

너는 얼굴을 물들이고

저녁은 느슨해지고

 

너의 한 호흡에 사과꽃이 눈을 뜬다

 

 

 

 

 

김진돈 약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과 대학원 졸업(한의학박사)

2011열린시학』『시와세계로 상반기 신인상 등단.

시전문지시담편집위원, 한국동서문학편집위원, 시전문잡지

포에트리 슬램편집위원 역임

 

시집: 그 섬을 만나다』『아홉 개의 계단(작가세계)

전문도서:자녀 건강』『사계절 웰빙식품』『체질약차 110% 활용법외 다수.

 

현재,문학과 사람편집위원, 운제당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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