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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외9편 / 김 승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2/06 [22:14] | 조회수 : 538

 

▲     © 시인뉴스 포엠



가위바위보 / 김 승

 

 

 

이긴 사람이 한 잎씩

머리부터 떼어 내기로 해

그다음은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그리고 양쪽 갈비뼈

두 다리마저 다 떼어내고

척추뼈만 남긴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

 

먼저 버리는 사람이 먼저 떠날 수 있는 세상

바람에 흩날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황홀함은

이긴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이파리를 다 떼어낼 때까지 아픔도 있겠지만

바둥바둥 붙어 있어 보아야 한나절인데

매미가 울기 시작하고

아지랑이는 고물고물

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기어오르는데

물 한 모금 없이 마른하늘을 쳐다보며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건 비참한 일이지

 

우리

그냥

하나씩 하나씩

가벼워지자

먼저

 

 

 

 

 

 

티어 인(Tear In*)1/ 김 승

 

 

 

눈물을 넣어요

깜빡이는 호수 위로 눈물이 넘치게요

호수 위를 날아가던 새들이 똥을 싸게요

구름이 흔들리게요

 

바람을 불어요

눈물과 새똥이 섞인 비빔밥은

뿌리가 내리기 쉬운 옥토

눈물이 뿌리를 내리고

흔들흔들 흔들리게요

 

흔들리는 것 까지는 죄가 아니잖아요

똥 냄새가 난다고

노숙자를 쫓아 낼 수 없듯

바다가 똥으로 덮인다 해도

갈매기를 죽일 수는 없잖아요

 

똥을 먹고 자란 무는 맵기는 해요

심지가 생겼다고 버릴건가요

무채가 맵다고 못 먹는 게 아니잖아요

우린 그곳에서 왔잖아요

무를 뽑고 생긴

구멍

 

 

* Tear in : 인공눈물의 이름

 

 

 

 

 

플라이트 레이더(Flight Radar) / 김 승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

병아리처럼 꼬리를 물고

 

런던 하늘을 뒤덮었다

발 디딜 틈 없는 하늘

미세먼지가 뒤덮은 봄날의 우울처럼

피할 수 없는 탈출

 

폭염을 피해

노란 꼬리 하나를 잡고 따라간다

몬트리올에서 레이캬비크를 향하는

 

현미경처럼 스크린을 확대하면

넓어지는 하늘

부딪칠듯했던 표시들이 여유 있게 꼬리를 물고

그 사이로 시원한 아이슬란드 바람이 숨을 쉰다

 

얼음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오직 흰색으로만 앉아 있는

세상의 틈 사이로

FL804는 착륙한다

 

창문을 여니

습하고 더운 공기가 가슴을 때린다

출발도 못해 축축해진 꿈처럼

 

 

*플라이트 레이더 : 전 세계 운행되는 모든 비행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

 

 

 

 

 

 

로고젝트 여덟시 / 김 승

 

 

 

 

 

산 그림자가 용지호수 중심부를 향해

길게 손을 뻗으면

잠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가로등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속삭인다

귀가 간지러운지 연두색 잎사귀

바람에 귀를 씻는다

 

앞서가던 강아지 긴 혓바닥으로

<>을 물어 가고

뒤따라가던 주인이 <>자를 가로채 가자

기회를 보던 하루살이들 일제히 달라붙어

존재가 있는 한 절망은 있다고 웅웅 거린다

 

여기저기 뿌리내린 행복 대출론이

버드나무보다 더 많은 가지를 뻗고

코카 잎을 받아 든 사람들은 행복한 얼굴로

물에 빠진 대출을 읽고 있다

 

초승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여덟시가 되면

화려한 분수는 허리를 감싸 안고

어두운 세상 명치를 향하여

알레그로 음표들을 힘껏 쏘아 올리지만

 

하얀 희망줄기 초승달 아가미를 낚으러 오르다가

~~

호수 밑바닥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데

 

 

* 용지호수 로고젝트에서 비추어 주는 글

 

 

 

 

 

블루투스 스피커 / 김 승

 

 

 

음표는 입안에서 머물 뿐
모이지 않는 생각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독백 한번 하지 못하고

 

침묵이 먼지처럼 두껍게 내려앉은 이 집은

누군가의 허밍에도 불이 붙을 것처럼

바짝 말라 있다

 

술기운에 묻은 비린내가

봄비 따라 들어오면

스멀스멀 연두색 추억들이 꼼틀거리지만

 

이 방의 주인은 침묵

알코올 냄새를 에너지로

한바탕 노래로 풀고 싶지만

꿈은 금방 말라버렸다

 

시냇물 따라 흐르던 리듬은

굳어버린 텍스트 뼈마디

찢어진 단어들 사이에 끼여

시집詩集으로 휴거할 날만 기다리고

 

 

 

 

 

 

깜빡거리다 / 김 승

 

 

 

누워서 LED 등 커버에 박힌 별의 숫자를 헤아립니다

 

네 개의 큰 별이 보초를 서고

안으로는 세 개씩 두 개씩

거리를 두고 사각형 방을 만들어

별 하나를 가두고 있어요

작아질 대로 작아져

겁에 질린 눈만 깜박거려요

 

나는 제일 앞에 앉아서

선생님이 떨어뜨린 분필을 줍거나

칠판 지우는 일을 도맡았지만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몸을 검색해서

십 원 나올 때마다 한 대

자발적 신고를 하고도

잊고 있는 게 없는가 두려움에 떨며

조롱 섞인 비웃음을 남기며 떠날 때까지

겁먹은 눈을 깜빡거렸지요

 

고개를 흔들고

LED 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요

엑스자 대각선 안에는 다섯 개의 별들이

놀이를 하네요

엑스 와이축 중간에 선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눈물을 흘리네요

 

축구를 하다가 애매한 상황이 생기면

상대편 형들이 나에게 물어 왔었지요

거짓말을 못 하는 천성 때문에

우리 편 형들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지요

운동보다 더 난해한 건 줄을 잘 서야 산다는 거였어요

 

별 하나가 신경이 쓰여

불을 끄기도 하고

눈을 감아 외면했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깜빡거리는

아이처럼

 

 

 

 

 

유통기한 /김 승

 

 

 

냉동실에는 멈춰진 유통기한이 차 있어

두더지를 잡아 햇빛으로 고문하듯

밖으로 끌어내면

나는 심판자

이야

 

냉동실 안에는

죽일 수 있는 것들이

가득 있어

나의 선택은 죽음을 의미하지

 

 

냉동실에 들어간다는 건

우울이 얼음처럼 얼어서 생이 속박된다는 것

뜨거운 세상을 피해

그 속으로 들어가지만

 

죽음과 우울을 한꺼번에 묶는 신

인류 최후 인간이 지상에서 사라진대도

눈 하나 껌벅하지 않는

당신

 

의연하게 살아보려 해도

세상이 뜨거워

짧아지는 유통기한을 멈춰보고 싶어

냉동고로 들어가는

 

그런데 신의 유통기한은요?

 

 

 

 

 

타살의 언변言辯 / 김 승

 

 

목련 나무 아래

길고양이들의 검은 물그릇

찾아든 고양이마다 물을 마시다

물속의 낯선 얼굴 날쌔게 할퀴었다

 

물은 잠시 울렁거렸고

떨어진 목련꽃 흔들리다 멈추더니

오후의 평화는 더는 금이 가지 않았다

 

햇살은 햇살을 쫓고

허공은 허공만 부풀려 금세 자지러진 오후

목련 그늘 따라 서쪽으로 해가 진다

 

목련을 올려다보면 볼수록

형용하려 해도 형용할 수 없던 말

생의 모든 소원을 다 껴안은 봄이

펄펄 물속으로 뛰어내린다

 

이 모든 것

한 가족이 번개탄을 피우고

함께 떨어진 새벽의 일이었다

 

 

 

 

 

물방울 신부 / 김 승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구분 없이 살기로 해요

서로를 찌를 뼈들은 추려

입 밖에 버리기로 해요

 

비가 오는 날이면 

신작로를 달려

웅덩이에서 드디어 한 몸이 되어

겁이 없는 배수관을 지나

강으로 흘러들어

 

어둠이 내리면 갈대밭에 누워요

그렇게 마음을 섞어 그렁대다 

새벽이 오면 안개와

뽀오얗게 혼을 섞기로 해요

삐그덕 거리는 침대는 아주 버려도 돼요

 

바람이 불고

지구가 조금만 빨리 돌아준다면

반대편 아이슬란드로 가요

묻어둔 꿈을 일으켜 오로라를 세워요

 

지금 내게로 스며든다면

이 모든 말이 꿈이 될 거예요

 

 

 

 

오로라 & 오르가즘 / 김 승

 

 

 

오로라를 보고 싶다 했나

황제펭귄이 거니는 설원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다 했나

꿈속마저도 촘촘히 점령한 안개를 뚫고

남극  비행기 티켓으로 떠났어

 

흰색의 나라에는 정위치가 없어

좌표가 없는 세상은 너무 황홀해

오르가즘은 아마 비취색이거나

푸른색 밑동에 붉은색이 젖어 있을  있어

 

처녀를 의미한다는  아니야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부재를 속삭이는 전화 같은 것일 뿐이야

비행기를 진짜 탔는지는  수가 없어

 

나는 횡단보도 건너 희미한 

안개 속에서 솟아오르는 오로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야

 


    

 

 

김 승 시인

 

2017년 시집 시로 그림을 그리다로 작품 활동 시작

계간 [시와편견] 2019년 여름호에 이지엽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2019년 두 번째 시집오로라 & 오르가즘출간

시사모 동인 /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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