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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김령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2/10 [20:13] | 조회수 : 708

 

▲     © 시인뉴스 포엠



 

실종

김령 -

 

신천댁이 사라졌다

 

사흘 전까지 웃으며 고기도 드시고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하지만

십 수 년 전 영감이 사라지고 나서

아니 그 이전 고물고물한 아이들의 젊은 엄마일 때

설거지물을 텃밭에 뿌리러 나올 때면

가끔씩 검은 머리와 눈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과 그 친구들

대청마루에 북적일 때면 담박에

선명한 색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간격이 너무 멀어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새날을 헐어낼수록 새 밤을 흘려보낼수록

온 몸의 빛깔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홀로 빈 집에서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마당 들어서며 부르면 느릿느릿 걸어 나오곤 했다

 

형체가 사라지고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날이 늘어갔다

명절이나 휴가철 자식들 들르는 날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옷감의 물이 빠지듯 온몸의 색이 바랬다

벽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 잦아지고

옅은 회색빛을 띠다가 허공에서 불쑥

한 팔이 솟아나곤 했다

 

일 년 전 작은 딸이 부산으로 모셔갔을 때

실루엣만이 따라갔다가 한참 후

겨우겨우 뒤따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시 고향집 돌아와 한 달 후

 

신천댁 벽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실종> 시작 노트

 

 

이 시는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시험 감독을 하다가 선 채로 단숨에 쓰고 거의 퇴고를 하지 않은 작품이다. 단숨에 썼다고는 하지만 그 바탕은 오래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신천댁은 바로 옆집 깨복쟁이 친구 경원’(갱원이라고 부르던)엄마이다. 친구엄마라고는 해도 그 친구는 일곱 남매의 막내고 나는 맏이니 거의 할머니뻘이다.

언제부터인지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부터 나는 막연하게나마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삶의 곁에 죽음이 늘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고물고물한 아이들의 젊은 엄마일 때

설거지물을 텃밭에 뿌리러 나올 때면

가끔씩 검은 머리와 눈썹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이 부분은 사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아주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선배들까지 서울로 부산으로 돈 벌러 가는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나는 그 언니 오빠들이 돈 벌러 갔다는 얘길 들을 때도, 명절에 잘 차려입고 사과박스를 들고 올 때도 늘 기도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그들이 제발 뿌리를 내리고 잘 살아가기를, 힘들고 고달플 때 고향을 기억하고 힘을 내기를,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웃음을 잃지 않기를.

 

내 모든 글은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늘 중학교만 졸업한 우리 동네 언니 오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약력>

전남 고흥 출생

201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 시부문 당선

2017<시와 경계> 신인상 당선

2019<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시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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