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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외1편 / 오정순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2/16 [00:35] | 조회수 : 518

 

▲     © 시인뉴스 포엠



풀등*

오정순

 

 

 

덮고 있던 푸른 이불 걷히자 만삭의 배가 드러난다

침대 바닥까지 내보인 적 없기에 등이라 했다지

그러나 그건 분명 만삭의 배

언제부터 배가 불러왔는지 이불 속이 궁금하다

 

몇억 년이라는 소문은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루에 두 번 이불을 걷는다는 것 외엔

날마다 출산 된 생명체들이 주위에서 맴돌고

를 열고 막 태어나는 비단 고동들이

뱃가죽 위로 올라온다

임신과 출산으로 뱃가죽은 주름져 있다

주위를 맴돌던 불가사리와 조개도 엉금엉금 기어와

주름 속에 숨는다

불룩한 배를 콕콕 두드리는 갈매기

태어날 것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가 보다

 

늘 무엔가 간절한 소망

바다의 몸짓으로 키운 거대한 모태신앙

 

 

 

 

* 대이작도에 있는 모래섬으로 밤과 낮에 한 번씩 모습을 보인다.

 

 

 

 

도토리나무

오정순

 

 

 

산불로 전쟁을 치른 듯한 세상,

햇빛은 미치광이처럼 밝았다

복날 도망쳐 나온 개처럼

가죽이 반쯤 그을려 버린 소나무가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소나무가 제 몸을 접어 햇빛을 모아줄 때

자동차가 먼 길 준비하며 주유하는 것처럼

나는 온몸 가득 그 빛을 충전했다

 

나는

작은 공기 방울이었는지 물방울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는 건 약간의 습기와

매캐한 연기가 느껴지는 컴컴한 곳에서

두려움이 뭔지 알아갈 때부터였다

어떤 강한 기운이 나를 밀어 올렸을 때

비로소 그곳이 나뭇가지 속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물오물 충전한 그 빛 되새김질하던 어느 날

몸속에 숨어있던 화살촉들이 밖을 향해 겨냥했다

폭죽 터뜨리며 평화를 노래하는 진달래의 만류 없었다면

세상을 향해 쏘아댔을지도 모른다

화살촉을 펴니 잎맥들이 푸른 양식 나르느라 분주하다

화살을 방어하듯 투구 하나 매달 때

화마에 어미 잃은 어린 다람쥐, 나무 밑을 돌고 돈다

퀭한 눈엔 공포가 서 말이다

 

나는 투구 속 열매 위해 젖줄 물리려고 밤잠 설쳤고

폭풍에게 납작 엎드리는 비굴함도 기쁘게 견딜 수 있었다

모든 열매와 잎들이 각각 제 몸치장으로 분주할 때

스스로 탯줄 자르고 굴러가는 도토리 한 알

잃어버린 어미 젖꼭지 발견한 듯 덥석 무는 다람쥐

 

나는 자식을 내주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시작노트 <도토리나무>

 

가끔은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되었을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각종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강원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산불을 만났던 곳을 지나게 되었다. 검게 그을려 모두 죽어버렸을 것 같은 곳에서 촉촉한 기운이 올라오고 그 속에서 끈질긴 생명체를 발견했다. 그것이 나라면, 그것이 나였으면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디로 들어갈까 어떻게 들어갈까 하다가 기억에도 없는 어떠한 기운을 핑계 삼아 나뭇가지 속으로 들어가 도토리나무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할 말이 많아진다.

 

 

 

 

 

 

약력

 

오정순

 

충청남도 예산 출생. 2006년 재능대학 문예창작과 졸.

2010년 사회복지학, 2018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 전공

2009년 한울문학 신인상(, 소설) 6회 복숭아문학상

개인시집으로 수신인은 나였네, 그곳에 가면, 전설을 덥석 물다

국제펜클럽 회원, 갯벌문학, 청라문학, 인천문협 이사

2019년 인천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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