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객관식을 확장하려고 외1편 / 이상주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23 [10:28] | 조회수 : 251

 

  © 시인뉴스 포엠



 

객관식을 확장하려고

       

         이상주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이 줄을 서요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버튼

다른 이름으로 서 있는 것들이

근본은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고도

길게 줄을 서요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몸에 익혔던

거리 두기, 사지선다

자판기 사장님은 안내장을 붙여 두어요

여러분 얼마나 좋아요?

버튼이 네 개라 아주 익숙하죠?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이는

줄 맞춰 앞으로 가면 바다에 빠지는 걸 몰라요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는 노래에 빠져요

말씀만 하세요

언제든지 기억 속의 그 간격을 떠올릴게요

 

익숙한 사지선다처럼

당신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의 2번 문구가 보이네요

하지만 그 말은 메타포가 깊어요

(당신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권리 사항이니까요

네 가지만 주어진 권리라도 꼭 행사하세요

어차피 커피뿐이지만)

우리 회사에는 왜

율무차, 유자차는 없는 걸까요

(자유는 있지만 종류가 없어 미안합니다

얼마든지 자유롭다는 거짓말에 계속 속아주세요)

나는 뒤돌아 나오는 길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커피 찌꺼기뿐인 종이컵을 봅니다

모조리 믹스커피입니다.

율무차, 유자차는 아니더라도

나는 주관식을 쓰고 싶어요

집에 돌아와 커피 블렌딩 동영상에

구독 버튼을 꾹 눌러요

내일은 좀 다른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해요

 

 

 

 

입덧

 

 

     이상주

사랑이란 게 임신인 건가

여자가 아니라서 자궁이 없는

 

그래서 어딘가 절뚝거리는

밤은 잠 없이 밝아 온다

유산균을 양수 삼아 어금니를 잉태한 죄다

위장에 뼈를 묻었던 날

막힌 변기처럼 울컥일 수밖에 없는

아침이 밝아 온다

필요한 것들만 편집된 기억

사람을 품어야 할 곳에 어금니만 있고

뼈를 묻지 말았어야 했다

칼슘이 응고되어 위에서 자랄 수 있을까

당신의 이름이 어금니가 되었을 때

모두 녹아들어 혈관 속을 흐르다

나의 일부가 될 거라는 거짓말

스스로 걸었던 최면

대장으로 파고든 상상임신,

배를 움켜쥐고 흔들거린다

 

 

 

 

 

 

《이상주 시인》

 

1996ALL FOR YOU 시 부문 신인상

2020년 신세계문학 소설 신인상

신세계문학 사무국장

시동인 시납공간 리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