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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검詩劍 / 김동원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2/31 [09:29] | 조회수 : 168

 

  © 시인뉴스 포엠



시검詩劍

 

김동원

 

 

천하를 갖고 싶으냐!

 

쉬지 말고 광활한 초원에 말을 달려라

 

칼을 쳐들고 불의 행간을 뚫어라

 

아무도 흔적을 남길 수 없구나

 

바람만 칼끝을 보고 있다

 

눈을 파내어라, 귀를 묻으라

 

직유는 결코 혼자 죽지 않는다

 

귀신도 모르게 은유를 쳐내는구나

 

불이 내렸도다!

 

시시각각 말은 휘황찬란하구나

 

말이 말을 닫으니 일어나는 말이 없구나

 

달려도 달려도 이미 와 있는 말

 

을 찾을 자영원히 없을 지니,

 

를 베라, 천지사방 색을 베라

 

무덤은 산 자들의 퇴고가 아니냐

 

정녕, 천하를 갖고 싶으냐,

 

번개처럼 단칼에 놈의 목을 베라!

 

 

 

 

 

  , 나는 시에 혹하는가. 천지만물이 나와 불이不二한 까닭이다. 병은 생사生死의 면벽 수행이다. 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 낀 풍경은 ‘환’이다. 어릴 때 나는 집 앞 바다가 우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달빛에 스민 혼령인 듯, 그 천길 물속에서 우는 곡소리는 슬펐다. 생에서 죽음이 싹트는 엄혹한 사실 앞에서, 죽음에서 생이 열리는 영감靈感을 느꼈다. 내 시는 병의 문을 열고 바라본 앞마당 가득 핀 꽃의 이야기요, 피의 이야기다. 수 만 생을 윤회한 나의 또 다른 환생의 조각보다. 하여, 나는 늘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렸고 외로워 흔들렸다. 놓쳐 버린 물의 무늬로 흔들렸고, 불 속 그림자로 흔들렸다. 밑도 끝도 없는 기미와 기척에 흔들렸고, 불안한 목소리에 흔들렸다. 언제나 서정은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의 시학’이자 꿈꾸기다. 나는 법고法鼓의 뼈와 살을 발라 먹고 창신昌新의 새 길을 연다. 만물의 음양을 받아들여 시의 형과 상을 빚는다. 전통의 불신과 전복이 아니라 계승과 성찰을 통해, 시의 요체를 꿴다. 현실 공간인 몸과 시의 공간을 하나로 본다. 격물格物을 궁구하여 치지致知로 나아간다. 직유를 통해 사물의 극을 치받고, 은유를 통해 물아物我가 된다. 하여 밤낮없이 비극과 역설, 아이러니와 모호성, 풍자와 해학의 행간에 바장였다. 시의 급소, 그 사랑과 이별의 통증은 신명과 지극으로 풀었다. 소리를 쫓다 숲을 잃었고 언어를 쫓다 시를 들었다. ‘이름이 없는 천지의 처음, 무명無名’과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 유명有名(도덕경 1) 사이를 헤맸다. 어둠에 손을 넣어 달을 만졌고, 바다에 머리를 넣어 해를 먹었다. 을 뚫다 색을 얻었고, 색을 품다 공을 보았다. 하여, 시는 ‘천하에 천하를 감추는 작업’(약부장천하어천하若夫藏天下於天下(장자)’임을 알겠다. 하늘은 감추고 시인은 들춘다. 간절히 묻고 또 물었다. 세상을 향해 가장 아파하는 자만이, 가장 아름다운 시를 얻는다. 하여, 나는「시검詩劍」을 뽑아 한바탕 천지무天地舞를 춘다.

 「시검詩劍」은 천하를 베는 칼이다. 해와 달 위에서 무현금無絃琴을 들으며, 한바탕 춤춘 검무劍舞. 베고 베도 베이지 않는 무검이다. 심연의 현이자 혼의 가락이다. 하여,시검詩劍」을 빼들고 날마다 새벽까지 을 타고 말의 목을 베었다. ! 천하에 뿌려진 말의 비린 흰 피여! 지칠 때까지〈칼을 쳐들고 불의 행간을〉뚫었다. 과 말의 동음이의를 부려 천의무봉을 꿈꿨다. 바람의 심장을 상징의 끌로 각한 음영이, 나의 시다. 의 그림자를 잡아 다겹의 이미지로 허공에 매달았다. 하여시검詩劍」은〈아무도 흔적을 남길 수〉없다. 사람의 혀끝은 이다. 몸을 베는 섬뜩한 저잣거리의 말. 독언毒言은 세상의 귀를 썩게 한다. 하여〈눈을 파내어라, 귀를 묻으라일갈하였다. 귀신도 모르는 바람의 은유. 한 마디로 천하 마음을 움직인다. 은 창조의 기물奇物.〈시시각각 말은 휘황찬란〉하다. 입을 막고 혀를 감추면 천하의 명시가 숨는다. 을 잘 쓰면 검을 피하고, 옳은 말은 무언행無言行이다. 하여〈을 찾을 자영원히 없을 지니,시검詩劍이여!를 베라, 천지사방 색을 베라〉정녕, 천하를 갖고 싶으냐, 시인이여!〈번개처럼 단칼에 놈의 목을 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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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도열 2021/04/26 [19:40] 수정 | 삭제
  •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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