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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의 날 임서원
그놈 주려고 밤새 만든 식혜를 페트병에 담아 가는 기분 알아? 둥둥 떠 있는 밥알 같은 마음 아냐고 식혜 싫어한다며 떠나버린 그놈이라면 내 귀에 못으로 박혀 있는데 술집에서 너는 또 투명해지고 있다 창밖에 비는 오고 너는 속을 다 보여준다
가끔 투명한 것들의 뒤쪽은 삶 이전에 구겨 놓은 풍경 같아 꼬깃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얘기는 자꾸 뒤쪽으로 간다.
너는 유리창에 붙은 낙엽처럼 어떤 미련 같은 것을 쓸며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다
못난 사랑을 벌레 먹은 상처로 놓고 점점 붉게 물든다 덜컹대던 창문이 식혜 앙금처럼 연민으로 가라앉는다
풍경이 의젓해진다
너는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널브러진 너를 보며 생각했다
그놈은 진짜 식혜가 싫어서 갔을까 ?
애肝 임서원
생선을 통째 구울 때는 배를 가르지 않고 창자를 꺼낸다 나무젓가락을 아가리에 넣고 둘둘 돌린다 젓가락 끝에 닿는 게 있다 싶을 때 홀치듯 꺼낸다 쏙 빼내고 난 아가리를 정리하면 온전한 생선으로 석쇠에 뉘어진 후로는 여벌의 몸이다
안으로 빨려 들어간 그녀의 입술은 숨이 수시로 함몰됐던 흔적이다 먼지로 떨어진 몸뚱이를 침을 발라 찍어 내면 거미줄 냄새가 났다 남편과 자식을 보낼 때마다 손잡이 없는 입을 벌려 창자가 꺼내졌다 가장 깊숙한 곳부터 끊어져 홀치듯 빼내지고 신음이 여백 없이 들락여 목젖은 잠든 중에도 흔들렸다 버려진 내장처럼 그녀의 한숨은 바닥에 눌러 붙어 있었다 그해 겨울 언저리 가지치기하듯 떨어져 나간 시간이 멈췄다 게워 내도 헛울음만 나오는 입을 메웠다 창자가 끊어져 나간 빈 공간에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그녀는 달궈진 어둠 위로 누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온전한 삶이었다 가지런히 옷을 입고 빛으로 가득 찬 터널을 지난다 한 줌도 안 되는 여벌의 몸이다
▲임서원 시인 201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2024년 아르코 발표지원금 수혜 제20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집 『어제는 사랑했고 오늘은 모르겠다』 <저작권자 ⓒ 시인뉴스 포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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